"낭독만 8시간…3주 산고 끝 오디오북 탄생"

입력 2021-11-24 17:22   수정 2021-11-24 23:42


“(항량이 물었다.) 어려운 싸움이라고 들었다. 애썼다. 어디 상한 데는 없느냐? (항우가 답했다.) 저는 아무 탈 없습니다만 군사들이 좀 상했습니다. 특히 강동 자제들을 수십 명 잃었고….”

지난 22일 서울 지하철 강남역 인근에 있는 오디오북 플랫폼 윌라의 스튜디오. 낭랑하면서도 편안한 목소리가 녹음실을 퍼져 나갔다. 성우가 책을 낭독하는 걸 듣고 있자니 《초한지》(이문열 지음·RHK)의 주인공 항우와 유방이 진나라 수도 함양으로 진군하는 모습이 마치 눈 앞에 펼쳐지는 것만 같다.

책을 ‘듣는’ 문화가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책은 등장한 이래 읽히는 존재였지만 바쁘고 할 일 많은 현대인들은 책의 오랜 본질마저 바꿔놓고 있다.

“책을 읽고 싶지만 독서가 부담스러운 분들, 운전하거나 음식을 만들면서도 독서하고 싶은 분들이 주로 오디오북을 듣습니다. 30~40대 직장인 비중이 높고 남녀 비율은 비슷해요.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 한국은 오디오북 도입이 늦은 편이지만 독서를 쉽게 하고 싶다는 욕구를 해소해주면서 이용자들이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이화진 윌라 오디오북콘텐츠팀 부장의 말이다. 2018년 베타 서비스를 시작하며 오디오북 시장에 진출한 윌라는 지난해부터 연간 1000종 이상의 오디오북을 선보였다. 소설, 에세이부터 부동산이나 주식투자 등을 다룬 경제·경영서까지 오디오북에 담는 콘텐츠의 폭도 넓다.

오디오북 제작은 품이 많이 드는 작업이다. 자기계발서나 경제·경영서는 성우 1명이 낭독하지만 성우 2~3명이 동원되는 소설 작품도 적지 않다. 이달 초 선보인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 오디오북에는 무려 16명의 성우가 캐스팅돼 600여 명에 달하는 등장인물을 연기했다. 그간 이 회사의 오디오북에 참여한 성우는 200명이 넘는다.

300쪽 분량 단행본의 경우 성우가 단순 낭독하는 시간만 8시간 가까이 걸린다. 편집과 NG 삭제, 볼륨 조절과 톤 보정, 배경음악(BGM)과 효과음 삽입 등 후속 작업에는 40시간 넘게 소요된다. 책에 따라 다르지만 오디오북 1권을 제작하는 데 평균 3주가량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눈으로 읽는 것을 전제로 쓰인 책의 내용을 소리로 전달하는 것은 전문 성우에게도 쉽지 않은 과제다. 경력이 20년을 넘는 이규석 성우는 “애니메이션이나 영화 더빙 녹음과 달리 책은 한 박자 느리게 긴 호흡으로 읽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책의 내용과 분위기를 숙지하기 위해 ‘예독(미리 읽기)’을 하고 발음이 어려운 단어들을 미리 점검한다”면서 “문어체 문장을 최대한 듣기 쉽게 낭독하는 등 다른 녹음보다도 신경 쓸 것이 많다”고 설명했다.

오디오북 독자(청자)의 관심도 구체화·세분화하고 있다. 오디오북 콘텐츠에 대한 리뷰가 늘면서 ‘이런 책을 오디오북으로 만들어 달라’거나 특정 성우에 대한 팬층도 형성되고 있다.

이 같은 관심에 힘입어 오디오북은 빠른 속도로 확산하고 있다. 윌라 구독자(회원)들의 올 상반기 월평균 오디오북 재생 시간은 8시간40여 분으로, 2019년(0.9시간) 대비 973.5% 증가했다. 2년도 안 돼 10배 가까이 급증한 것. 올 상반기 완청률은 42.8%에 달했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발표한 ‘2021 출판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오디오북 시장 전망은 2019년을 100으로 했을 때 지난해 111.1, 올해는 122.0이다.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갈 것이라는 얘기다. 향후 국내에서 활성화가 필요한 전자출판 방식으로도 ‘오디오북 출판’이 100점 만점에 77.5점으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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